슈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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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표북위 26° 13′ 1.31″ 동경 127° 43′ 10.11″

수례문
세이덴[1]
성벽[2]
슈리 성
일본어식 한자 표기:首里城
가나 표기:しゅりじょう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슈리 성
통용 표기:슈리 조
로마자:Shuri-jō

슈리 성(일본어首里城 슈리조[*]오키나와어首里城 (スイグシク) 수이구시쿠[3])은 오키나와현 나하 시에 있으며, 예전에는 해외무역의 거점인 나하 항을 내려보는 언덕에 있던 이다.

개요[편집]

류큐국의 왕성으로, 오키나와 현 내 최대 규모의 성(구스쿠)이다. 전쟁 전에는 세이덴 등이 국보였지만, 1945년의 오키나와 전투과 전쟁 후의 류큐 대학 건설에 의해 완벽하게 파괴되어, 얼마 안되는 성벽이나 건물의 기초등의 일부가 남아있다. 1980년대 전말의 류큐대학의 니시하라 정으로 이전과 함께, 본격적인 복원은 1980년대 말부터 행해져, 1992년에, 세이덴 등 옛 유적을 묻어서 되돌리는 형태로 복원되었다. 1993년에 방송된 NHK 대하 드라마 《류큐의 바람》의 무대가 되었다. 2000년 12월, “구스쿠 유적 및 류큐국 유적”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지만, 등록은 “슈리성 터”로, 복원된 건물이나 성벽은 세계유산이 아니다.

주위에는 같은 세계유산에 등록된 다마우둔소노햔우다키 석문 외, 제2쇼씨의 보다이 절인 엔카쿠 절 터, 국학 공자 묘적, 뱃놀이가 행해진 연못인 류후치베자이덴도 등의 문화재가 있다.

역사[편집]

슈리 성의 창건시대는 명확하지 않다. 근년의 발굴조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흔적이 14세기 말의 것으로 추정되어, 삼산 시대에는 중산(中山)의 성으로서 쓰였던 것이 확인되었다. 대체로 오키나와 일대에 많은 구스쿠가 지어졌던 13세기 말부터 14세기 사이에 슈리 성도 세워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삼산 시대를 통일하고 류큐 왕조(제1 쇼 씨 왕조)를 세운 쇼하시 왕은 슈리 성을 류큐 왕국의 수도성으로 쓰게 되었다. 동시에 슈리는 수도로서 번영을 누렸고, 제2 쇼씨 왕조에서도 변함은 없었다.

기록에 따르면 슈리 성은 몇 번이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재건되었으며, 재건 때마다 목재 조달이 문제가 되어 사쓰마 번으로부터 목재를 제공받거나 미리 목재의 수요를 헤아려 본섬 북부에 목재 조달을 위한 숲을 조성해놓기도 했다. 오늘날의 슈리 성은 세 번째 화재로 재건된 1715년에서 1945년까지의 모습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1879년 류큐 처분으로 류큐가 멸망하고 오키나와 현이 설치된 뒤 정전 등 슈리 성의 건물은 정부 소재지로써의 역할을 잃었고, 일본 육군 제6사단의 군영으로 쓰이다 슈리 구(후의 슈리 시)에 매각되어 학교 따위의 건물로 이용되었다. 왕궁이 사라진 슈리성은 빠르게 황폐해졌고 노후화가 심해져 붕괴 직전까지 갔다. 이미 몇 개의 문은 부서진 상태였고 정전의 해체도 검토되었으나, 이토 츄타, 가마쿠라 요시타로 등 관계자들의 노력으로 보존이 결정되어, 쇼와 초기에 해당하는 1928년 ~ 1933년까지 슈리 성 정전의 개수공사를 마치고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현사 오키나와 신사의 본전으로써 미나모토노 다메토모(源爲朝)와 함께 류큐의 역대 국왕이 이곳에 모셔졌다.

태평양 전쟁 중 오키나와 전투에서 일본군은 슈리 성 아래에 지하 참호를 파서 총사령부를 두었고, 1945년 5월 25일부터 사흘에 걸쳐 미군 미시시피 함 등으로부터 포격을 받아 27일에 소실되었다. 또한 미군의 오키나와 상륙 과정에서 미군과 일본군 간에 벌어진 격렬한 전투로 슈리 성 아래의 마을들을 비롯해 류큐 역대 국왕의 보물이나 류큐 왕국의 행정 문서를 포함한 많은 문화재가 파괴되었다. 패전 뒤에는 슈리성 터에 류큐 대학이 세워지면서 많은 유구가 헐리거나 묻혀 버렸다.

1958년에 수례문이 재건된 것을 시작으로 엔카쿠 절문 등 부근의 건축부터 재건이 시작되어, 1972년 오키나와 현이 일본으로 복귀하게 된 후에는 성의 입구에 해당하는 회합문과 주위의 성곽이 재건되었다. 1979년에 류큐 대학이 이전하고 1980년대에 오키나와 현과 일본 정부에 의해 슈리성 재건계획이 책정되어, 본격적인 복원이 시작되었다. 1989년, 슈리 성 유구의 발굴조사나 쇼와 초기의 정전 개수 도면 · 사진자료, 현지 노인의 기억 등을 토대로 공예가나 직인을 동원되어 슈리 성의 장식 · 건축기술의 복원 작업과 함께 정전 재건이 시작되었다. 1992년에는 정전을 중심으로 하는 건축물 등 이곳으로 이어지는 문의 여러 성곽이 재건되어 슈리성 공원이 개원했다. 현재는 슈리 성을 중심으로 한 일대가 슈리성 공원로서 정비 · 공개가 권유되고 있으며, 정전 뒷편에 해당하는 성곽이나 건축물들의 재건사업도 계속 행해지고 있다.

2000년에 슈리 성은 오키나와의 다른 구스쿠과 함께 구스쿠 유적 및 류큐국 유적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구조[편집]

슈리성은 외곽과 내곽으로 되어 있고, 우나(御庭)라 불리는 광장에 서있는 정전, 북쪽 궁전과 남쪽 궁전등의 건물은 내곽에 집중되어 있다. 내곽에는 즈이센(瑞泉)문, 로코쿠(漏刻)문등 아홉개의 문이, 외곽에는 환합(歓会)문, 구경(久慶)문 등 4개의 아치문이다.

다른 일본의 성과는 달리 , 슈리성은 중국의 성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문이나 각종 건축물은 옻나무로 주홍칠이 되어 있어, 기와 지붕에는 초기는 고려기와, 후에 적와가 쓰여져, 각 부의 장식에는 국왕의 상징인 이 많이 쓰였다. 또, 전란이 없는 류큐국 시절에 재건된 적도 있어, 군사적 목적보다도 정치적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 성곽은 다른 구스쿠와 같이, 류큐에서 주로 나는 석회암으로 쌓아 올려져 있다.

왕이 거주하는 중심부는 정전(正殿)이라 불리며, “가라하후”(唐破風)라고도 불린다. 안에는 1층과 2층의 양쪽에 우사스카(御差床)라는 옥좌가 만들어져 있으며, 2층의 우사스카 위에는 청나라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현판이 장식되어 있었으나 오키나와 전투에서 모두 소실되고, 강희제가 내린 중산세토(中山世土)라는 편액만이 재현 복원되어 걸려 있다.

정전 앞에는 신료들이 알현하거나 중국에서의 책봉 사절을 맞아들이기 위한 우나가 만들어져 있다. 그것을 에워싸듯이 정치 시설인 북쪽 궁전, 의례 등에 쓰였던 남쪽 궁궐, 뜰로의 입구가 되는 봉신(奉神)문이 세워져 있다. 게다가 그것을 각종 문·성벽이 둘러싸는 형태로 되어있다. 이들 구조는, 중국의 자금성과의 유사성이 지적되고 있다. 그리고 남쪽 궁전은 사쓰마 번의 접대를 위해 쓰였기에, 여기만 일본풍의 의장이 쓰였다.

슈리성에서는 현재도 세이덴 뒤쪽의 새 생활 공간에 대한 건물의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본래의 목조건축로서 복원된 건물은 세이덴 뿐이다. 본전은 오키나와 본섬 북부의 산에서 큰나무를 옮기는 “목예식” 등의 의식이 행해져, 대만 등에서 목재를 써서 재건되었다. 다른 건물에는 콘크리트를 쓰는 등 외관만을 복원하였다. 옛 성벽은 일부가 남겨져 있고, 새로운 성벽의 건설을 할 때 발굴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에, 지표 가까이에 옛 성벽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이것이 유일하게 원래의 슈리성의 유구이다.

종교적 역할[편집]

슈리 성은 정치 및 군사의 거점인것과 함께, 류큐의 얼마안되는 성역이기도 하다. 이전에는 성내에서는 열곳의 우타키가 있고, 또 슈리성 안 성곽의 남쪽의 커다란 범위를 “게오노우치”(京の内)라 부르는 성역이 차지하고 있다. “게오노우치”는 열 곳가량의 우타키의 중의 여러 곳과 울창한 커다란 나무의 숲이나 바위가 있을 뿐인 장소였지만, 이 숲이야말로 슈리성의 발상지로, 슈리성을 국가의 성지로 정하고있는 중요한 장소이다. 기도쿠 다이쇼를 시작해 신녀들이 게오노우치에서 제사를 행하였지만, 그 제사의 내용이나 제대로 된 게오노우치 내부의 상태는 지금도 알 수 없고, 현재 여기서 행해지는 제사의 연구에 기초하여 공개를 하기 위해 정비공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완전한 재현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라 생각된다.

부지내의 우타키 등은 단순한 유적이 아닌, 현재에 이를때까지 신앙의 대상이다. 류큐대학이 있던 무렵에는, 출입이 자유로웠던 탓에, 그 구조물 안의 이곳저곳의 절에는 항상 선향이나 종이 쪼가리가 바쳐졌고, 주로 여성의 절하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그러나, 슈리성의 복원에 의해 무단 출입이 금지되고 말았다. 그래서 “슈리성의 건물의 재활했지만 절로서는 파괴되었다.”라는 말이 있다.

관련 성주[편집]

(제1쇼씨 왕조)쇼하시 왕 → 쇼추 왕 → 쇼시들 → (중략) → (제2쇼씨 왕조)쇼엔 왕 → 쇼센 왕 → 쇼신 왕 → 중략 → 쇼이쿠 왕 → 쇼타이 왕

관련 항목[편집]

관광 및 교통 정보[편집]

  • 입장료: 세이덴 입장료는 800엔(어른 개인)으로, 일본의 성곽 입장료로서는 꽤 비싸다.
  • 교통: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의 종점 슈리 역에서 도보로 약 15분이며, 노선 버스로는 약 3분 거리이다.

각주[편집]

  1. 이동 2006년 5월 촬영
  2. 이동 2004년 7월 촬영
  3. 이동 “スイグシク”. 首里·那覇方言.

외부 링크[편집]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C%8A%88%EB%A6%AC%EC%84%B1


슈리 성

최근 수정 시각: 

파일:attachment/슈리성/1.jpg
▲ 태평양 전쟁으로 파괴되기 전의 정전

파일:attachment/슈리성/2.jpg
▲ 현재의 정전

파일:attachment/슈리성/3.jpg
파일:attachment/슈리성/4.jpg
▲ 슈리성의 성벽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유네스코 세계유산

이름

류큐 왕국의 구스쿠 유적과 관련 유적

Gusuku Sites and Related Properties
of the Kingdom of Ryukyu /
Sites Gusuku et biens associés
du royaume des Ryukyu

국가·위치

일본 오키나와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00년

등재기준

(ii),[1] (iii),[2] (vi)[3]


しよりもり げらへて げらへたる きよらや
슈리성을 세워, 세워진 아름다움이여
かみ しもの 世そろゑる ぐすく
여기 류큐의 세상을 다스릴 구스쿠
(又) まだまもり げらへて げらへたる きよらや
(다시) 마다마무이[4]를 세워, 세워진 아름다움이여
류큐 왕국의 신가집(神歌集) 《오모로소시(おもろさうし)》 中

1. 개요2. 가는 방법3. 역사4. 주요 건축5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6. 서브컬쳐에서의 등장

1. 개요[편집]

일본 오키나와 나하 시에 있는 류큐 왕국의 왕궁이자 거성(구스쿠)이다. 참고로 슈리는 나하와 별개의 지역으로서 류큐 왕국의 수도였는데 지금은 나하 시의 일부로 합병되어 있다. 상세한 내용은 슈리 문서를 참고하기 바람.

2. 가는 방법[편집]

오키나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볼 만한 역사 유적이며 일본이나 한국중국과는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독자적인 양식을 볼 수 있어 오키나와 본섬 여행을 간다면 거의 반드시 한번쯤 들르게 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오키나와 도시 모노레일 종점 슈리역이나 그 앞 역인 기보역에서 도보 5분 정도 거리인데 경사가 약간 있어 편한 복장으로 가는 것이 좋다. 모노레일을 통해 나하 공항 및 도심과 직접 연결된다. 입장료는 820엔이다.[5]

3. 역사[편집]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fcf7c1d2.jpg

슈리 성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13세기 슌텐 왕조의 왕인 슌바준키가 건설했다고 하나, 슌텐 왕조 자체가 전설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서 분명하지 않다. 오키나와판 삼국시대인 삼산시대에는 중산 왕조의 성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쇼하시 왕이 우라소에를 함락시키고 중산을 지배하기 시작할 때에 수도가 되었다.

오랫동안 한중일의 사이에서 중계무역을 하며 류큐 왕국은 번영했지만 1453년 왕위다툼인 시로·후리의 난(志魯·布里の乱) 당시 슈리성이 불타 없어진 적이 있다.

쇼네이 왕 치세인 1609년, 사츠마 번의 침략으로 류큐 왕국은 사츠마의 속국이 되었다. 슈리 성에는 지금도 중국 사신과 일본 사신을 알현하는 시설이 각각 따로 있다.

이후 류큐 처분과 폐번치현을 거쳐 쇼타이 왕이 도쿄로 압송되어 왕궁의 역할을 상실하였다. 일제에 의해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 당시 육군 제 32부대의 총사령부로 쓰이다 미군의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파일:attachment/슈리성/Univer.jpg
전쟁 이후 빈터에 류큐 대학 캠퍼스로 사용되기도 했었다. 지금은 학교는 다른 곳으로 이전했고 슈리 성 복원은 상당히 진행된 상태이다.

4. 주요 건축[편집]

사진

설명

파일:attachment/슈리성/11.jpg

슈레이몬(守礼門)
슈리 성의 정문이다. 일본 엔 2천엔권 지폐의 도안이기도 하다.

파일:attachment/슈리성/12.jpg

세이덴(正殿)
왕궁의 정전이다.

파일:attachment/슈리성/13.jpg

난덴(南殿)
왕궁의 남전으로 정전 옆에 있다.

파일:attachment/슈리성/14.jpg

타마우둔(玉陵)
류큐 왕국 역대 왕들의 왕릉이다.

5.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편집]

2000년 12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슈리 성 터(しゅりじょうあと)만이 등재되었고, 전후 재건된 건물과 성벽은 세계유산이 아니다.

6. 서브컬쳐에서의 등장[편집]

  • 콜 오브 듀티: 월드 앳 워의 미군 미션 마지막 전투(오키나와 전투)가 이 슈리 성에서 이루어진다. 가만히 놔두면 일본군이 무한정 개미떼같이 나오는데,(베테랑에서는 수류탄도 무한으로 던진다) 결국 플레이어의 두차례의 폭격 요청으로 슈리 성과 함께 죄다 날려버린다.

  • 러브라이브! TVA 2기에서 2학년의 수학여행 장면 때 배경으로 등장했다.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다른 기준과 함께 적용 권장)[4] 真玉杜, 슈리 성의 옛 별명[5] 왕궁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전으로 들어가는 데에서 입장료를 받는다. 정전 외의 다른 곳은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출처: https://namu.wiki/w/%EC%8A%88%EB%A6%AC%20%EC%84%B1


오키나와 세계 유산 ‘슈리 성’

오키나와의 관광 명소라고 하면 뭐니 뭐니해도 슈리 성.
오키나와 여행 중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장소일 것입니다.
「류큐 왕국의 구수쿠 유적지와 관련 유산」 중 하나로서 2000년 12월 2일 세계 유산으로 등록된 이후 더욱 주목받고 있습니다.

사진 제공 : 슈리 성 공원

사진 제공 : 슈리 성 공원

슈리는 전쟁으로 소실 이전은 1700 년대에 지어진 정전 등이 국보로 지정된 1945 년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의 공격에 의해 구 스쿠의 건물은 모두 소실. 1992 년에 정전이 기존의 유구를 채워 다시 형태로 복원되었다.

슈리 성 공원을 둘러싼

슈리는 정전을 중심으로 한 광대 한 국립 공원이다.
공원 내에는 유료 지역 무료 지역이 있고 정전 등의 견학은 유료이다.

나하 시내를 조망할 수있는 언덕 위에 있으며 경승지이기도하다. 정전 외에도, 슈레 이문 동산 히 무 우타 키 석문 (그 ひゃん うたき 내지 몽) 歓会 문 등 ‘류큐 왕국의 구 스쿠 및 관련 유산 군 “세계 문화 유산에 등록 된 귀중한 역사적 문화 물건을 둘러싼 수있다.

슈레 이문

완만 한 언덕길을 올라가면 먼저 보인다 슈레 이문.
또한 清王 시대 (1527 ~ 1555)에 창건.
守礼 (朱令)은 “예절을 중시하는”이라는 뜻으로, 대문 위에는 “보수 禮之 쿠니 (주홍 영의 나라)」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오키나와 전쟁으로 소실, 1958 년에 복원되어 지금에 이르고있다.
1972 년에는 오키나와 현 지정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유명하게되고, 이후 두 천엔 지폐의 도안도 있습니다.

사진 제공 : 슈리 성 공원

歓会 문 (かんかいもん)

슈레 이문을 지나면 歓会 문이 보인다.류큐 왕조 시대, 슈리에는 중국 황제의 사용 “冊封使 (수 ぽう し) ‘가 초대했지만,이 문은 일행을 환영한다는 뜻을 담아 이름이 붙여졌다.
다른 건물뿐만 아니라 오키나와 전쟁으로 소실했지만, 1974 (쇼와 49) 년에 복원되었습니다.

사진 제공 : 슈리 성 공원

사진 제공 : 슈리 성 공원

슈리 성 정전 (주홍 鯉丈 정전)

정전내는 유료 영역입니다.
문을 빠져 나가면 “어 정원 (うな)”라는 안뜰 광장의 공간이 펼쳐져있다.
이곳은 연중 다양한 의식이 거행 된 곳이다.

사진 제공 : 슈리 성 공원

사진 제공 : 슈리 성 공원

원각사 (원각사)

과거 슈리 성 주변에는 사원이나 왕족과 신하의 건물 인 저택 (うどぅん)가 많이 있었다.그 중에서도 사원의 대표적인 것은 성 북쪽에 위치한 ‘원각사’이다.
1933 년 (쇼와 8)은 국보로 지정되었지만, 오키나와 전에서 다리 이외는 모두 파괴되었다.
그 후 1968 년 (쇼와 43)보다 복원 정비가 진행되고, 総門, 돌담, 右脇門, 방생 연못 (ほうじょうち)가 복원되었다.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연못 위에 다리는 옛날 그대로의 국가 지정 중요 문화재이다.

원각사

용담 (리우 탄)

1427 년에 만들어진 인공 연못 「용담 (리우 탄) ‘은 과거이 부근에 세워져 있던 오키나와에서 가장 오래된 비문 “안국 山樹 華木記 (암흑 ざんじゅ 家僕 き)’에 따르면 국가 상 품 기계가 중국에 가서, 조경 기술을 배우고 이것을 만들었다 고되어있다.

 

낮 용담 (리우 탄)

사진 제공 : 슈리 성 공원

 

라이트 업 된 밤의 용담 (리우 탄)
사진 제공 : 슈리 성 공원

사진 제공 : 슈리 성 공원

여기에 소개 한 것은 극히 일부입니다.
슈리 성 공원은 다른도 추천 장소가 아직 많이 있습니다.

오키나와를 여행 할 때 꼭 한번 류큐를 피부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s://www.naha-navi.or.jp/ko/magazine/2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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